'나'를 끊어쓰는 연습

회고방법

🌙밤의 일기: 오늘의 타임라인을 기준으로 있었던 일을 적고, 그때의 감정과 지금 쓰고 있는 감정을 적어보기

✏️일일 회고: 오늘 배운 것, 성취한 것, 감사한 것, 내일의 big 3 적기

벌써 7월이 되었습니다. 2023년 상반기, 여러분은 어떻게 보내셨나요? 그리고 앞으로 남은 날들은 어떻게 보내실지 참 궁금합니다. 저의 하반기는 덕질로 시작해서 격한 코로나를 거쳐 부채로 마련한 독립으로 흐르고 있어요. 한여름 블록버스터 영화를 2주 내내 보고 있는 것처럼 어지러운 시간이었습니다. 한 사람이 홀로서기를 한다는 것은 물질적으로도 큰일이지만 정신적으로도 커다란 사건인 것 같아요. 떠밀리듯 가는 나날들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 저는 오늘도 회고를 합니다.

🌙밤의 일기

'밤에 하는 결정은 반드시 다음 날 낮에 다시 한번 고려하라'는 말이 있지요. 그만큼 감성에 잠기기 쉽고 실수하기도 쉽기 때문일 거예요. 그러나, 밤에 쓰는 일기는 낮에 쓰는 것으로 대체할 수 없답니다. 오늘의 마음은 오늘의 것이니까요.

저는 잠들기 전에 하루의 타임라인을 기준으로 떠오르는 일들을 적고, 그때의 감정과 지금 글을 쓰면서 정리된 감정을 함께 적어요. 쓰다 보면 10분을 훌쩍 넘어 30분이 걸리기도 합니다. 한창 덕심이 불타던 때에는 새벽까지 마음을 쏟아내느라 2시간이 넘은 적도 있었어요. 이제는 롱런을 위해 짧은 기록만 하지만요.

도구로는 빠른 글쓰기를 위해 디지털 앱인 '에버노트'를 활용하고 있어요. 다이어리처럼 쓰다 보니 지나간 일기를 돌아보진 않지만, 가끔 열어본 어느 날의 마음들은 같은 ‘나’인지 신기할 정도로 다채로웠어요. 들뜨기도 하고, 외로워하기도 하고, 분노에 사로잡혀 있기도 하고, 고민에 빠져있기도 했지요. 그리고 꼭 말미에는 처음 느꼈던 감정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덧붙여있어서, 모든 것은 순간일 뿐이라는 걸 새삼 느꼈답니다.

감정에 휘둘리지 않기 위해 쓰기 시작한 일기였는데, 몇 년째 괜찮은 성과를 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계란이들도 잠들기 전 시끄러운 속을 먼저 재우고,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돌아보는 연습을 하고 싶다면 밤의 일기를 써보는 건 어떨까요? 글로 조제하는 감정 수면제가 파도 같은 마음을 다스려줄 거예요.

✏️일일 회고

밤의 일기와 달리 일일 회고는 감정보다 이성에 초점을 둔 방식입니다. 하루를 허망하게 보낸 것 같았을 때, 뭐라도 해낸 것을 한번 찾아보자는 생각으로 시작했어요. 오늘의 내가 배운 것(학습), 성취한 것(성과), 감사한 것(겸손), 그리고 내일 꼭 해내야 하는 Big 3 목록까지 적습니다. 주간 회고도 같은 방식으로, 한 주간의 일일 회고를 훑으며 뽑아내요. 저의 경우 원활한 기록관리를 위해 데이터베이스 활용이 간편한 노션 앱을 사용하고 있어요.

정말 아무것도 없었다고 생각했던 날도, 일일 회고를 쓰기 위해 곰곰이 떠올려보면 무심하게 지나쳤던 배움이나 성과들이 있었어요. 스스로에게 박한 평가를 내리는 것이 익숙해져서 그것을 배움이라고, 성과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거죠. 글을 쓰면서 남들에게는 기꺼이 하는 칭찬과 격려를 자신에게는 짠순이처럼 아꼈던 지난 행태를 반성하곤 합니다.

회고에 '감사한 것'을 넣은 이유는 내가 해낸 것과 받은 것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였어요. 오늘 하루, 분명 노력해서 얻은 것도 있지만 누군가 또는 무언가가 나에게 건네준 것도 있다는 것을 잊지 않으려고요. 아팠을 때 회사동료에게 받은 비타민 캔디, 멍하니 걷다가 발견한 예쁜 나무, 오랜만에 만난 옛 친구의 안부 인사처럼요. 쓰다 보면 다시 한번 그때의 기억이 살아나서 조금 더 행복해지기도 한답니다.

Big 3를 적으면 내일의 큰 줄기가 대략 머릿속에 그려져서, 다음 날 아침에 그날의 일정을 짜기가 수월해져요. 밤의 일기에 이어 일일 회고까지 마무리하면 정말 오늘의 시간이 끝이 납니다.

회고란, ‘나’를 끊어 쓰는 연습

회고를 한 날과 안 한 날의 차이는, 바로 다음 날에 드러나요. 바느질을 할 때 매듭을 지어 마무리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의 차이랄까요? 잘 끝맺은 날의 다음은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갈 수 있어요. 어제의 나는 종결되었으니까요. 회고를 쓰지 않은 날의 다음은 어제의 내가 오늘에 빙의해있는 것 마냥, 연속성을 강하게 느껴요. 하루 이틀은 괜찮지만 그 기간이 길어지면 마치 맞지 않는 계절의 옷을 입고 있는 것 마냥 내가 낯설어지더라구요.

어린 시절에는 한 달, 일 년이 참 길게 느껴졌는데 점점 나이를 먹을수록 일 년이 마치 한순간처럼 느껴졌어요. 보통 우리는 연말이 되어서야 일 년을 돌아보는 총회고를 하곤 하죠. 하지만 부랴부랴 무슨 일이 있었는지 떠올려보려 해도 기억나지 않아요. 그렇지만 일일 회고가 부담스럽다면, 주간 회고 또는 월간 회고를 기록해보는 건 어떨까요? 일 년 단위가 아니라 주 혹은 월 단위로 ‘나’를 끊어 쓰다보면 훨씬 이야기가 풍부한 삶을 누릴 수 있을 거예요.

좋았던 점: 다시 독립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전에도 종종 나가 살았지만 빚쟁이가 되어 집을 구한 건 처음이에요. 살림살이를 장만하느라 가계부가 하염없이 길어지고 있기도 합니다. 일기에는 공간 배치를 어떻게 할지, 물건은 무엇을 더 마련해야 하는지, 예산구멍은 어떻게 채울지 같은 고민들로 가득해졌어요. 비가 끊임없이 오는 가운데, 열심히 물기를 훔치며 쓸고 닦고 잘 살아보겠습니다.

아쉬운 점: 시작을 코로나와 함께하다 보니 정말 해낸 게 없는 것 같았지만 그럼에도 '추가적인 휴가 요청하기', '참을 수 없는 통증을 인지하기' 등등 스스로를 위한 활동들이 있었어요. 아프면 무작정 참기만 했던 과거와 다르게 ‘잘 아프기’ 과정을 겪은 것 같아요. 다음에 비슷한 고통이 닥쳐오면 이번 경험을 바탕으로 대처할 수 있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