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추천 대상
머리와 가슴이 꽉 막혀서 눈앞이 멀 것 같은 사람

─ 추천 도서
《초콜릿 이상의 형이상학은 없어》, 페르난두 페소아

"저 먼 나라의 해변도시인 리스본 시인의 말, 당장 초콜릿을 먹어."

─ 복용법

바닷가를 거닐다 보면 불어오는 바람에 특유의 짠 내가 밀려들어온다.

오래 걷다 보면 해풍에 머리는 떡지고 모래사장의 경우 신발 안이 난리가 난다. 그 불쾌한 자극이, 일상 어딘가의 문제를 헤매고 있던 정신을 붙잡고 ‘여기’에 놓는다. 강렬한 햇살을 피해 어디 근처의 카페나 그늘막 벤치에 앉아있다가 시집을 펼친다. 시를 잘 알지 못할수록 좋다. 깊이 읽지 않아도 괜찮다. 종이 한 장에 적힌 글자 몇 줄, 문단 하나를 읽는다. 끌리지 않으면 다른 시로 넘어간다.

그러다 고개를 들어 아까 걸었던 바닷가를 바라본다.

스멀스멀 다시 올라오던 일상의 걱정들이 바다와 하늘 사이로 퍼지고 퍼지다가, 밀도가 낮아진다. 멍하니 보다 다시 시집으로 시선을 돌린다. 눈에 담은 바다가 시의 여백으로 쏟아지면서 글자들이 둥둥 떠다닌다. 내가 읽어야 했던 자료들, 써야 하는 가계부, 배워야 하는 활자들이 머릿속에서 밀려나고 시 몇 줄만이 남는다.

평소의 내가 쓰지 않던 단어와 모르는 감각 속에서 머물다가 나오면, 어쩐지 뜨끈한 물속에서 막 일어난 것처럼 멍해져요. 뇌 청소가 잘 된 것입니다. 끝없이 채우다 보면 머리부터 심장까지 과부하로 고장이 나죠. 그때마다 종종 이렇게 ‘비워내기’를 해주면 삶에 여유가 생깁니다. 그럼 마치 처음처럼 다시 시작할 수 있어요.

2. 백지의 호텔과 빽빽한 소설

어느 날 묵었던 호텔방

─ 추천 대상
멀리 나가기는 어렵지만 당장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은 사람

─ 추천 도서

《밤의 여행자들》, 윤고은

"누워서 하는 여행, 조금 다크하고 꽤 낭만적이다."

─ 복용법
오래 전에 재밌게 보았던 프로그램인 ‘알쓸신잡’에서 김영하 작가가 호텔에 대해 이런 말을 했었습니다.

"우리가 오래 살아온 공간에는 상처가 있다. 호텔에는 우리 일상의 근심이 없다"

쉼은 멈춤인 동시에 비움이라고 생각해요. 집에서는 일상의 기억들, 널려있는 집안일들 때문에 자꾸 잡생각이 들곤 했죠. 그럴 땐 낯선 곳으로 가는 방법이 유용했습니다. 호텔이든 게스트하우스든 에어비앤비든, 혹은 지인 집도 괜찮아요. 어디든지 내가 주인공이 아닌 곳으로 가면 되니까요.

이것은 사고의 초점을 '나'의 역사에서 '너'의 역사로 바꾸는 연습이라고 할 수 있어요. 소설은 나 외의 대상에 초점을 맞추게 하면서 시선의 전환을 도와줍니다. 나의 과거, 나의 현재, 나의 미래를 담은 이야기를 잠시 덮어두고, 나와 상관없는 가상의 이야기를 펼쳐봐요. ‘너’가 웃을 때 나도 웃고 화를 낼 때 같이 화를 내고, 그러다 이해가 안 되는 행동을 하면 잠시 멈추어 왜 그럴까 곰곰이 생각해 보다가 페이지를 넘기는 거죠.

어떤 생산성도 개입하지 않는 장소에서, 만날 일 없는 가상의 누군가와 관계를 맺고 몇 시간을 보내다 보면 어느새 몸에 들어가 있던 힘이 빠져있음을 느낄 수 있어요. 곧 집으로 돌아가면 익숙한 '나'의 껍질을 뒤집어쓰고 내일을 준비해야겠지만, 한 박자의 쉼이 생각의 숨을 고르게 해줄 거예요.

안국정화

시간 : 매일 10시 - 21시

장소 : 안국역 4번출구 로얄창덕궁빌딩 6층

비용 : 1시간에 만 원 (시간당 최대 8인)

야심차게 책을 읽으러 왔는데, 예약한 시간 동안 분다버그 진저를 홀짝이며 멍만 때리다가 끝나버렸어요. 왼쪽에는 산, 오른쪽에는 궁, 눈앞에는 6층 높이의 나무들. 마치 무성영화처럼 창을 사이에 두고 느리게 흐르는 시간을 감상하다가 저도 모르게 목적을 잊고 말았답니다. 어른을 위한 다락방이 있다면 마치 이곳 같을 거예요. 아무것도 하지 않고 하염없이 앉아만 있어도 좋은 곳에서 속에서 떠오르는 문장들을 노트에 적다가 돌아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