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랑철학》, 이수영

철학자 니체를 아시나요? 밈으로도 많이 활용되는 ‘신은 죽었다’의 원 발언자죠. 저는 고등학교 3학년 겨울방학에 니체를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수능이 끝나고 시간이 남아돌자 동네 도서관 100번 대 서가를 기웃거리다가 특이한 제목에 이끌려 열어봤어요. 그땐 몰랐습니다. 재밌는 철학을 소개해주는 건가 싶어서 집어 들었던 책이 제 청년기를 지배하게 될 줄이야. 이렇게 책이 위험합니다. 지금의 저에게 이미 뿌리내린 사고방식이라 무엇을 말씀드릴지 고민했지만 책에 들어있는 내용을 두 가지만 골라 소개해볼게요.

진리라는 우상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우리의 감각은 우리를 감옥의 벽 속에 가두듯이 가두는데, 우리는 이런 지평에 따라 세계를 측정하면서, (…중략) 우리는 이러한 측정을 감각이라고 부른다. 이 모든 것은 오류 그 자체다!”

_프리드리히 니체, 《아침놀》, 117절

막 성인이 된 나이에 만난 니체는 제가 지금까지 읽었던 책들, 나름대로 쌓아왔던 가치관들을 모두 망치로 부숴버렸습니다. 이전에는 '모범적인 사람'이 좋은 것이라 배웠고, 그렇게 되어야겠다고 생각했으나 그것은 그저 주입된 것일 뿐,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어요. 그간 받았던 교육, TV에서 말하는 뉴스, 부모님, 선생님, 친구들의 말을 저는 받아들이기만 했었던 거죠. 그건 자기 잘난 맛에 살던 저에게 큰 충격이었습니다. 칭찬으로 쌓아 올린 자아상이 무너진 터에서 지난 삶을 돌아보니까, 정말 아무것도 없었거든요.

이후 저는 제가 실천하고 있던 '모범적인 행동'에 대해 다시 돌아보게 되었어요. 내가 그것을 정말로 옳다고 생각해서 하는 것인지, 그래야 한다고 들어서 하는 것인지 구분하기 시작했지요. 동시에 제가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던 세계들에 대한 재점검에도 몇 년을 쏟았습니다. 가부장제, 성별론, 자본주의, 노동, 민주주의, 기독교, 정상성, 국가, 기득권, 소수성 등을 의심하고 토론하고 답을 내고, 이를 반복하는 시간이었죠. 그럼에도 모르는 게 너무나 많은 세상이고 무엇이 옳고 그른지 가늠하기 어렵지만, 저는 계속 배우고 답을 찾을 거예요.

가치의 ‘가치’를 물은 적이 있는가?

“내가 무엇을 창조하든,

내가 그것을 얼마나 사랑하든,

나는 곧 내가 창조한 것과 나의 사랑에 대적하는 적이 되지 않을 수 없다.

그렇게 되기를 나의 의지가 원하고 있으니.”

_ 프리드리히 니체, '자기 극복에 대하여',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K-장녀’라는 단어가 돌기 시작했을 때 격하게 공감했었습니다. 성격 자체가 스스로에게 극도로 엄격한 편이었던 저는, 사랑하지만 저를 힘들게 하는 가족이, 친구가, 그리고 스스로가 참 버거웠어요. 애정이라는 이유로, 너를 위한다는 말로 강요되는 의무가 무거웠고 그렇게 느끼는 제 자신이 당혹스러웠습니다. 나쁜 사람이 된 것 같았거든요. 저에게 그것은 ‘도덕적’이지 못했으니까요.

니체를 알게 된 후로는 제가 사랑하는 것들에게서 나를 지키는 방법을 조금씩 시도했습니다. 이전의 저라면 하지 않았을 거절의 말과 행동들을 하면서 사실상 과거로부터 270도쯤 돌았다고 할 수 있지요. 가장 극적으로는 가족관계지만, 그 외에도 ‘~이면 반드시 ~해야 한다’라는 사고의 틀에서 벗어난 것들이 꽤 많습니다. 그 과정은 참 볼품없고 치열했었지만 결과적으로 나타난 지금의 제가 좋아요.

한 명의 철학자가 백 년 뒤의 누군가에게 이렇게 큰 영향을 끼치기 위한 매개는 도서관에 꽂혀있던 한 권의 책이었습니다. 계란이들도 한순간에 삶을 뒤바꾸는 강렬한 만남을 가질 수 있길, 진심으로 바라고 있어요.

요즘 저는 책을 통해 새로운 세계를 알아가는 것보다, 알던 세계를 깊이 파고 있습니다. 이제는 세상 속에서 제가 바라는 것을 선택하고, 집중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느꼈기 때문이에요. 사는 게 지겨울 만큼 길었던 삶은 생각보다 그리 길지 않았어요. 그러니 이제 이 질문을 할 차례겠지요.

나는 어떻게 살고 싶은가?

아직 많이 헤매고 있지만 큰 방향은 이렇습니다. 저의 세계는 원가족과 달리 결혼도 없고, 아이도 없고, 스스로 벌고 모은 돈으로 스스로를 부양하며 끝을 맺게 될 거예요. 그런 미래를 향한 나침반으로 읽고 있는 분야는 ‘생활공동체’, ‘비혼 생활’에 관한 에세이들입니다. 베스트셀러인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외에도 국내엔 다양한 형태의 공동체 가족들 또는 따로 살면서 서로 의지하는 관계들이 있어요. 아직 관련 법이나 제도는 부족하지만, 인구변화가 가속화된 미래엔 이 형태가 주류가 될지도 모르죠. 가족 관계는 내밀한 만큼 영상 콘텐츠보단 책이 좀 더 솔직하고 깊숙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편이라 관심 있는 계란이들은 도서관 검색부터 시작해보세요.

여기에 더해, 그 미래를 막연히 사회에 맡길 순 없으니 자구책이 필요하겠죠. 그래서 관심을 두고 있는 분야는 ‘부’입니다. 돈 버는 법, 재테크, 부자 마인드 등 뭐든지요. 나이 들어서 혼자 아프고 힘들면 억울할 것 같아요. ‘젊어서 뭐 했니, 새벽아.’ 그렇게 스스로에게 한 소리 듣기 전에, 적어도 제 한 몸을 돌볼 수 있는 재산을 마련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선호하던 독서 분야는 아니라 많이 더디긴 하지만 계속 읽고 실천하다 보면, 60세 이후 월 300 이상의 현금흐름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바래봅니다.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던 시절이 그립기도 하지만 당분간은 몇 가지에만 집중하기로 했어요. 제가 바라는 미래와 밀접한 정보를 꾸준히 접하다 보면 그 모습은 점점 선명해지고, 마침내 이루어질 것이라 믿고 있으니까요. 

• 즐거운 추석 연휴 되셨길요! 출근하면서 양질의 뉴스레터 볼 수 있어서 감사를 드립니다. 저도 최근에 나를 좀 더 사랑하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어서 공감이 되어 의견을 남겨요. 삶이 조금 더 재미있어지더라고요. 리드님을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