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에 의해 이리저리 휘어져도 좀처럼 뽑히지 않는 갈대. 우직한 삶을 꿈꾸면서도 자주 불안함에 떨곤 했던 제게 '갈대 이야기'는 깊은 인상으로 다가왔어요. '흔들리는 걸 두려워할 이유가 뭐였을까? 흔들림은 당연한 건데.' 그러자 사고방식이 긍정적으로 바뀌기 시작했죠.

친구와의 대화 이후 저는 흔들리지 말아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게 되었고, 그 순간이 '현현'임을 자각하게 되었어요.

현현(顯現)은 무슨 뜻일까요? 오랜 시간 동안 현현을 좇아 온 저는 이렇게 정의하고 싶습니다. 누군가와의 대화, 책, 그림 등 일상을 살아가다 우연히 깨달음을 얻게 된 순간이라고요.

현현, 삶의 목차를 장식하는 일

하지만 현현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으면 현현은 그저 반짝이고 사라집니다. 그러니 오늘은 여러분께 추상적인 개념 현현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성장하는 방법을 알려드릴게요.

1. 인상 깊은 순간에 던지는 Why

<기획의 정석>에서는 기획 방법의 하나로 5why를 제안합니다. 문제에 직면했을 때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면서 본질에 가까워지는 것이 핵심이죠.

5why는 업무력을 증진하는 효과적인 방법이지만, 삶에도 적용하기 좋습니다. 추상적인 감정에 물음표를 던지다 보면 근본적인 원인을 찾을 수 있거든요. 제 예시를 보여드릴게요.

현현을 찾는 Why 예시

Q) 나는 왜 친구가 '갈대 같은 사람이 좋아’라고 답했을 때 충격을 받았을까?

A) 갈대 같은 삶을 긍정적으로 바라본다는 건 내 세상에선 있을 수 없는 일이었어. 난 늘 목표를 향해 우직하게 달려가는 사람만 멋져 보였거든.

Q) 왜 우직하게 달려가는 삶을 추구했던 거야?

A) 성공한 사람들이 그런 말을 하곤 하잖아. 성공하려면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되라고 말이야. 하지만 나는 꿈꾸던 분야에 취업했는데도 이 길이 맞는지 의심이 들었어. 진짜 좋아하는 게 맞는지, 미래에 잘 될 수 있을지 불안해서 혼자 세뇌했던 것 같아. 나는 절대 흔들려선 안 된다고 말이야.

Q) 왜 너가 택한 길이 맞는지 의심이 됐어?

A) 좋아하는 분야에 대한 막연한 낭만이 있었던 것 같아. 그래서 내가 어떤 성향인지, 무엇을 잘하는지도 모르고 불도저처럼 직진했지. 지금은 많이 후회해. 그렇지만 이렇게 생각하려고.

지금 나는 흔들리면서 더 나를 알아가고 있다고 말야. 다음 커리어를 준비할 때는 조금 더 신중할 수 있을 것 같아.

똘똘 엉킨 생각의 실타래를 풀어보니, '흔들리지 않는 나무 같은 삶'이란 가치관의 기저엔 불안함이 있더라고요. 자꾸 흔들리고 무서우니까, 흔들리지 말아야 한다고 스스로에게 주입했던 거예요.

현현은 이렇듯 굳게 믿던 신념이 깨질 때 나타나기도 해요. 그리 유쾌하지 않은 순간일수도 있죠. 하지만 내가 느낀 감정을 면밀히 살펴보는 게 중요해요. ‘왜 나는 충격을 받았을까?’ '왜'라고 꼬투리를 던지면서 문제의 본질을 파악하면, 나도 몰랐던 현현을 포착하고, 넓은 시야를 가질 수 있어요.

2. 현현에 물을 주세요

현현의 순간을 마주했다면, 이 깨달음이 오래 갈 수 있도록 만들어 볼까요? 저는 이를 '현현에 물을 준다'고 표현하는데요. 저는 현현을 그저 기억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손수 제 삶에 들여놓고는 해요. 플래너에, 지갑에, 눈에 잘 띄는 곳에 배치해 놓고 그것을 길잡이 삼아 하루를 살아내죠.

불안하지 않은 사람도, 불안하지 않은 날도 없다.

불안의 해소 대신 불안과의 동거를 선택해보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