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례길은 어땠느냐고, 고생하진 않았냐고 친구들이 호기심으로 묻곤 했어요. 꺼내고 싶은 이야기들은 무척 많았지만, 우선 이렇게 대답하곤 했지요. "산티아고 순례길은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고생길에 가까웠어. 하지만 그만큼 값지고 아름다운 추억이었고, 시간만 허락된다면 언제든 다시 그곳으로 떠나고 싶어." 

친구들에게 말했던 것처럼, 순례길이 마냥 낭만으로 가득 찬 여행은 아니었음은 솔직히 말할게요. 열댓 명 이상이 함께 잠을 자던 남녀 혼숙의 방 (사자후 같던 누군가의 코골이 소리!), 온수가 나오는지 매번 확인해야 했던 샤워 호스, 지하주차장 같던 생활 공간, 아침마다 동상이 걸릴 것처럼 얼어붙던 손을 떠올리면… ‘내가 왜 머나먼 타지까지 와서 고생하고 있을까?’ 한숨을 내쉬며 고향을 그리워하던 순간도 무척 많았더랬죠.

한국에선 의식주 자체에 대한 고민을 생전 해보지 않다가, 매일 잠자리가 바뀌는 낯선 환경에 적응하는 건 정말 쉽지 않은 일이었어요.

그래도 순례길은 열악한 환경에서의 고단함을 단번에 씻겨내는 재주도 대단했어요. 궂은 날씨가 예고되던 날엔 하루 종일 비와 함께 질척거리는 진창길을 보여주었다면, 다음날은 맑게 개어 눈부시게 아름다운 경관을 선물로 내어주었고, 심신이 한계에 도달했을 때도 저 멀리 한가롭게 돌아다니는 동물들의 모습이 보일 때면 ‘그래, 이 맛에 순례길에 오르지’ 하며 가슴이 벅차오르고는 했죠.

카미노 블루Camino Blue. 산티아고 순례길에 다녀온 순례자가 순례길에서의 기억을 잊지 못하고 줄곧 우울감에 젖어있는 상태를 일컫는 말이에요. (카미노는 ‘길’이란 뜻의 스페인어에요. 산티아고 순례길은 스페인어로 Camino de Santiago랍니다!)  여행을 떠나기 전에는 이 카미노 블루가 저에게 덮쳐오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어요. 하지만 순례길을 완주한 후, 유럽의 관광지를 방문해도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하는 저 자신을 보면서 비로소 제게 카미노 블루가 찾아왔음을 깨달았죠. 

순례길을 걸으면서는 저 자신을 이쁘게 꾸밀 필요도, 더 좋은 관광지를 찾기 위해 인터넷을 뒤져볼 필요도 없었어요. 그저 발이 가는 대로 걷고, 걷다가 힘들면 잠시 휴식을 취하면서 자연을 즐기면 되었으니까요. 이 단순하고 찬란한 행복을 잊지 못해, 언젠가 마음이 다시 혼란해질 때쯤 다시 한번 순례길을 찾으리라 굳게 다짐했답니다. 

📱디지털 노마드 vs 아날로그 폴더폰

⚖️커리어 vs 삶

순례길에 오를 때 내심 저는 여행을 통해 제가 180도 달라지길 바랐어요. 이전에도 큰 문제 없이 살아왔지만, 가끔은 커리어적으로 성공하고 싶거나 돈을 많이 벌고 싶은 욕망이 강하게 일었거든요. 문제는 그것이 타인의 눈을 의식하지 않은 건지에 대해서는 확신이 서지 않았다는 거예요.

그러나 순례길에서 정말 좋았던 풍경과 장면들은 온전히 색다른 것이었어요. 어떤 장면이었을까요? 아래 사진을 통해 계란이들께 보여줄게요.